그 밤, 우리는 왜 밖으로 나갔을까

별일 없던 하루였어. 진짜로, 아무 일도 없었거든. 평소처럼 늦게 일어나서 대충 밥 때우고, 침대랑 의자 사이를 오가며 시간을 죽이고, 그렇게 하루를 흘려보내던 참이었지. 근데 말이야—그 밤은, 뭔가 달랐어. 갑자기 우린 밖으로 나가야만 했고, 나갔고, 그게 우리를 좀 바꿔놨어.
이건 그냥 그날 밤의 이야기야. 이유가 있을 수도 있고, 없을 수도 있지만, 아무튼 우리가 왜 밖으로 나갔는지에 대한 그런 이야기.


뭔가 텅 빈 하루였지

하루 종일 핸드폰만 들여다보다가, 결국엔 넷플릭스 틀어놓고도 딴짓하고 있었잖아. 드라마가 재밌는 건 맞는데, 이상하게 집중이 안 되더라고. 화면은 켜져 있는데 머리는 딴 데 가 있고, 뭔가 꽉 막힌 느낌. 그런 날 있잖아. 괜히 마음이 울렁거리고, 속은 텅 빈 것 같은 그런 날.
그날이 딱 그랬어. 우리가 “야, 나가자”라고 말한 것도 아마 그런 허전함 때문이었을 거야.


아무 목적 없이 나간다는 것

솔직히 어디 가고 싶었던 건 아니었어. 그냥 방 안에 있고 싶지 않았던 거지. 목적이 없다는 건 이상하게 자유롭더라. 누구를 만나러 가는 것도 아니고, 뭘 사러 나가는 것도 아니고, 그냥 걷는 거야. 말 그대로 아무 의미 없이.
근데 그런 게 오히려 우리에게 더 많은 걸 줬던 것 같아. 왜냐면 그때 처음으로 ‘목적’ 없는 시간이 얼마나 중요한지 알게 됐거든.


밤공기, 그 무심한 위로

나가자마자 느껴졌던 그 싸늘한 밤공기 기억나? 처음엔 좀 춥다고 투덜거렸잖아. 근데 걷다 보니까, 그 차가운 공기가 이상하게 좋더라고. 뺨을 스치고 가는 바람도, 하늘에 떠 있던 희미한 별도, 그냥 다 괜찮았어.
그게 무슨 위로가 되겠냐 싶었는데, 그냥 조용히 거기 있어주는 것만으로도 위로가 되더라. 말 없이 곁에 있어주는 사람처럼.


아무 말 없이 걷는 시간

말이 없었잖아, 그때 우리. 특별히 나눌 얘기도 없고, 그냥 같이 걷고만 있었어. 근데 그게 그렇게 좋을 줄은 몰랐어. 말 안 해도 괜찮다는 거, 아무 말 없이 있어도 편하다는 거—그건 진짜 가까운 사이여야 가능한 거잖아.
그날 밤 우리가 함께 걷던 그 골목들, 가로등 불빛 사이로 비치는 그림자들, 그 모든 게 우리 사이의 거리보다 훨씬 가까웠던 것 같아.


편의점 앞, 컵라면 하나의 위력

결국엔 걷다 지쳐서 편의점에 들어갔지. 별거 없는데도, 그 공간은 참 따뜻했어. 형광등 불빛 아래서 진열된 과자들 사이를 한참 헤매다가 고른 건 결국 컵라면 하나. 따뜻한 물 붓고 벤치에 앉아 같이 먹었잖아.
웃기지 않아? 그냥 라면 하나 먹었을 뿐인데, 그게 그렇게 맛있고, 그렇게 기억에 남을 줄이야. 우린 아마 그 라면 안에 우리가 말 못 한 감정들을 좀 넣었던 거 같아.


별거 아닌 순간들이 모여 인생이 되는 거야

사실 지금 돌이켜보면, 대단한 밤은 아니었어. 그냥 갑자기 나가고 싶어서 나갔고, 아무 말 없이 걷다가, 라면 하나 먹고 돌아온 밤. 근데 왜 그게 이렇게 오래 남을까?
아마 별거 아닌 순간들이 진짜 중요한 순간들인지도 몰라. 인생은 거창한 이벤트보다도, 그런 사소한 밤들이 더 많이 쌓여서 만들어지는 거니까.


우리는 왜 밖으로 나갔을까?

다시 돌아와서 생각해보면, 그날 우리가 밖으로 나간 이유는 단순했어. 그냥 마음이 좀 답답했고, 방 안에 있고 싶지 않았고, 누군가랑 같은 공기를 마시고 싶었던 거지.
결국 중요한 건 이유가 아니라 같이 있었다는 거였던 것 같아. 뭔가를 해결하려고 나간 것도 아니고, 특별한 결심이 있었던 것도 아니었는데, 그냥 그런 밤이 우리를 조금씩 바꾸고 있었던 거지.


끝맺음 없이도 괜찮은 밤

그 밤은 딱히 결말이 없었어. 드라마처럼 갈등이 있고 해결되는 구조도 아니었고, 영화처럼 반전이 있는 것도 아니었지. 그냥 밤이었고, 우리가 있었고, 그게 다였어.
근데 그런 밤도, 아니 어쩌면 그런 밤이야말로 우리가 진짜 필요했던 게 아니었을까 싶어. 끝맺음 없이 흘러가는 그 시간 속에서, 우리도 조금은 가벼워졌으니까.


우리한텐 그 밤이, 그냥 그 밤이 아니었어.
그리고 앞으로도 그런 밤이, 자주 있었으면 좋겠어.
가끔은, 이유 없이 나가도 괜찮으니까. 🌙
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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